34년 만에 사라진 쉼터, 그 곳.

2011. 11. 9. 11:33

34년을 매일 지나는 곳. 칠성이라고 적혀져 있는 냉장고를 기준으로 왼쪽은 담배와 간단한 식료품 가게, 오른쪽은 국밥집이고 노란 판자를 덧씌운 쉼터 바로 앞은 버스 정류장이다. 어릴 적엔 이 곳, 쉼터를 지키던 붉은 볏을 자랑하는 수탉이 한 마리 있기도 했다. 닭의 수명이 짧은 탓인지, 그래도 기억으론 꽤 오래 이 곳을 지켰다. 올 해 들어서 쉼터가 사라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판자에 다리를 붙이고 노란 판자를 입고 있던 쉼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아주머니, 이 앞에 노란 장판 치우신 건가요?'
'네, 별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버렸어요.'
'아주.. 버린 건가요? 오래 전부터 있었었는데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이 동네도 참 많이 변했다. 동네가 재개발이 되면서 사람이 북적이던 시장 골목이 사라지고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단독 주택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대부분이 빌라로 바뀌면서 도시 미관은 예전보다 깨끗해진 것 같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며 눈길이 잘 눈에 띄질 않는다.

아직까지 재개발이 되지 않고 있던 이 곳도 갑자기 사라진 쉼터를 시작으로 재개발이 될 것 같다. 우연찮게 찍어둔 이 사진 한 장이 어느 날 과거에 대한 ‘기록’이자 ‘회상’이 돼버린다. 지금 이 곳은 도로도 다시 깔고 쉼터가 있던 자리는 철제로 된 커다란 파라솔이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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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악동아빠. "슈퍼배드(2010)"

2010. 12. 7. 23:04

달을 어설프게 훔친 악당 서열 2인자 '그루'와 제대로 훔쳐버린 악당 서열 1위 '벡터'

전직 악당 서열 1위 '그루'. 하지만 자기보다 젊고 똑똑한 만년 츄리닝 차림의 악당 '벡터'의 등장으로 1위를 뺏기고 만다. 그루는 무엇을 훔칠까 고심 끝에 하늘의 '달'을 훔쳐서 다시 1위를 빼앗아 오기로 마음 먹는다. 달을 훔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비는 바로 '축소 광선총'. 이것을 두고 '그루'와 '벡터'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달을 필요로 하는 '그루'와 제대로 달을 훔쳐버린 '벡터'.

왼쪽부터 '아그네스', '에디트', '마고'

앙증맞은 꼬마 히로인. 맏언니 마고와 둘째 에디트. 그리고 막내 아그네스까지. 이 꼬마들 덕분에 악동 '그루'는 진정한 악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애니매이션에서 그루의 직속 군단이자 제대로 웃음 펀치 날려주는 미니언 군단도 빼놓을 수 없다!

웃음 폭탄 '미니언' 군단!

애니매이션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재미'와 '웃음'을, 어른들의 입장에서 '순수함'에 동화될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애니매이션을 제작은 감독과 모든 스텝들은 이미 그들이 만든 캐릭터인 마고, 에디트, 아그네스, 그루, 백터 캐릭터에 동화돼 있는 상태일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동화같은 이야기로 신나게 '재미'과 '웃음'을 선사한다면 애니매이션은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나를 울게 만들기도 하고, 웃게 만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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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멋진 액션 영화, '아저씨'

2010. 12. 3. 07:26
기본정보  액션, 범죄, 드라마 | 한국 | 119 분 |
개봉 2010.08.04 
감독 이정범 
주연 원빈(차태식), 김새론(소미)...
공식 사이트  http://www.ajussi2010.co.kr/, http://cafe.naver.com/ajussi2010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자

한국에서, 한국 감독이, 한국 배우들이 만든 "한국판 액션 영화"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영화. 원빈, 김새론 주연의 "아저씨"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칭찬하고 싶은 것은 한국영화치고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킬링타임용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전에 작품성 또한 인정받아 마땅한 것은 물론이다.

세상을 등지고 신분을 죽인채 전당포 일을 맡고 있는 태식과 그를 '아저씨'라 부르며 외로움을 느끼는 소미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간다. 마약과 연루된 소미의 엄마 때문에 소미까지 곤경에 처하게 되고 오랜만에 태식은 신분의 본능을 되찾아간다. 어쩌면 꼬마 소미를 보며 예전에 지키지 못했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만 산다. 내일만 사는 녀석들은 오늘만 사는 나에게 죽는다.

원빈(차태식)은 우리나라 '케이시 라이백(스티븐 시걸)'이자 '제이슨 본(맷데이먼)'이다. 태생도 비슷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것도 비슷하고. 표정 연기와 액션 -동작이 크지 않지만 절도 있고 깔끔한- 이 그와 너무도 많이 닮았다. 네티즌들은 <레옹>, <맨온파이오>, <테이큰>과 많이 비교하는데 그보다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반영된 영화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

어? 소세지다. 나도 소세지 좋아하는데...

김새론(소미)의 연기를 보면서 앞으로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더 많은 빛을 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다코다 패닝'이 될지도 모른다.

- ‘소미’ 역의 김새론은 어떻게 캐스팅 하게 되었나?
- 이창동 감독님이 <열혈남아> 때부터 친분이 있기도 했고, 학교 은사님이기도 하시다. 어느 날 어떤 영화를 찍는데 거기에 설경구가 잠깐 출연한다고 하시더라. 그게 <여행자>였다. 그때 새론을 처음 봤는데, 첫 연기 치고 연기가 굉장히 좋았다. 그런 부분들이 인상적이어서 캐스팅하게 되었다.


메이킹 필름에서의 감독과 원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발차기라든가 원을 그리는 액션이라든가 동작이 크고 화려한 액션은 최대한 자제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요. 최대한 동작을 최소화하면서 동작을 끊는 액션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아저씨' 메이킹 필름 중에서 #1

 "원빈씨 대역 준비를 많이 했죠. 원빈씨하고 같이 9개월 동안 운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위험한 부분들을 준비해 둔 대역이 있었는데 준비만 했다가 퇴근한 경우가 많아요;;"

'아저씨' 메이킹 필름 중에서 #2

"스피드한 액션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든 헐리웃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영화보다는 조금의 정서, 사람다운 인간미가 느껴지는 액션 영화가 됐으면 하고요."

'아저씨' 메이킹 필름 중에서 #3

"앞으로는 '아저씨'같은 작품이 올지 모르겠지만, 각오라면 이거 한 번 했으니까 이보다 강한 액션 영화를 해보는 게 제 바람이죠!" 

아쉬운 점도 있다. 쓸데없이 달리는 자동차 뒤꽁무니 따라 열심히 뛰는 장면 -너무 식상하다- 이라든가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나 주연 배우들은 비장한 데 비해 나쁜 녀석들은 코믹하다. 잔인해도 코믹하다. 주연에 비해 나쁜 녀석들이 지나치게 코믹하거나 아님 나쁜 녀석들에 비해 주연이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말이다. 이래서 영화가 -어쩌면 원빈이- 더 빛을 발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꼭 원빈이 언급한 "정서, 아름다운 인간미" 때문은 아니다. 영화에서 '소미'를 제외한다고 해도 영화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스토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태식'과 '소미'를 통한 어떤 인간미를 느끼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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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라스트갓파더'로 웃기게 컴백하다.

2010. 11. 29. 07:56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갓파더'

2010년 12월 30일
심형래 감독은 코믹영화 '라스트갓파더(Last God Father)'로 웃기게 돌아온다.


몇 장의 스틸컷과 티저예고편이 공개되었는데 화면속 컬러를 흑백으로 바꾸면 딱 한 사람이 생각난다. 바로 '찰리채플린'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의 그는 '찰리채플린'임은 자명한 사실이고, 지난 '디워' 개봉 당시에 뉴욕타임스에서도 "한국의 찰리채플린"이라는 기사가 실렸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 기사는 외국의 시각이 아닌 우리나라에서의 그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쓰여졌을 것이고 그 기사를 접하는 외국인 대부분은 "뭐야? 형래? 영구? 누군데, 찰리채플린이라고 하는 거야?"하는 시큰둥한,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라스트갓파더'가 있다. 코믹 영화다. 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는 심형래표 코미디.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살아있는 거장. 바로 영구표 코미디 때문이다. 물론 외국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가 우리나라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경우가 흔한 것처럼 우리나라 코미디가 외국에서 "통할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심형래 감독의 오랜(?)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면 "통한다!"고 기대를 걸어본다. 또한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이런 해외 보도를 기대해 본다. "디워의 형래 감독은 21세기 찰리채플린이 확실하다!" 라고.

티저예고편을 보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찰리채플린이 떠오르는데 이것이 미국을 비롯 전세계적으로 때지난 코미디의 향수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라스트갓파더'를 통해 심형래 감독이 영화감독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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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 양자경, 강우성 주연의 중국발 'Face Off'

2010. 11. 28. 10:38

액션 | 중국 | 114 분 | 개봉 2010.10.14 
감독 오우삼, 수 차오핑 
배우 정우성, 양자경, 서희원, 여문락...
공식사이트 http://www.검우강호.com, http://www.gumwoo2010.com/

45도 정도 틀어서 다시 태어난 중국판 'Face Off'. 감독은 역시 오우삼이다!
화려한 무협액션 배우 '양자경'은 죽지 않았다. 우리나라 배우 '정우성'이 그녀와 함께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한 영화다. 나이를 잊은 듯한 배우 '양자경'은 1962년생(49세)이다. 그녀와 나이가 비슷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만옥, 관지림, 왕조현, 매염방. 그리고 이제 환갑이; 넘은 임청하. 그녀들은 이제 스크린에서 정녕 사라진 걸까. 여하튼, 이 영화는 '양자경'의 영화다.

이제 모든 업을 지우고 이 수련을 끝내겠어요

배경은 명나라 시대, 영화의 중심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달마대사'가 등장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말자. 우린 그냥 익숙한 스토리와 좀 더 다양해진 스크린 속 무공들에 시각을 맡기면 되니까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달마'는 영화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 그의 '절세무공'이라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이유는 짧게 말하면 이렇다. '너는 선하지 못해서 배우질 못한다.' 원래 악역이 배우고 마지막에 질기게 죽어줘야 영화는 좀 더 재미를 더할텐데 말이다.

창졸우교, 용회이명, 리청우탁, 이굴위신

'세우(양자경)'은 자신을 쫓는 세력들과 속세가 싫어 얼굴을 바꾸고자 하고 '아강(강우성)'은 부모의 복수를 위해 얼굴을 바꾼다. 둘은 나름 착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결혼도 한다.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이 영화에 살인(복수)을 위한 '필살기'는 없지만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담은, 자신의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또 다른 사랑을 지키는 아름다운 '필살기'는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극중 '세우'는 복 많은 여자다. 허긴 그녀는 '양자경'이니 그럴만도 하다.

스토리가 익숙한 -뻔한- 무협 영화일 수도 있지만 나름 탄탄(?)하다. 지루한 구석이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어느 멜로 영화, 어느 액션 영화에서 보아왔던 스토리의 짜집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지만 일단 액션의 화려함으로 그런 생각들은 싹 달아난다. 청순한 양자경의 모습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은 듯 하면서도 나름 나이를 잊은 듯 청순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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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복수극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11. 26. 21:04
스릴러 | 한국 | 115 분 | 개봉 2010.09.02 
감독 장철수 
배우 서영희(김복남), 지성원(해원), 백수련(동호 할매), 박정학(복남의 남편, 만종)..
공식사이트 http://kim_boknam.blog.me
영화의 처음 부분이다. 이 장면과 조금 후에 나오는 범인을 지목하는 상황을 연결해서 책갈피 해두면 마지막 회심의 모나미 볼펜이 굉장히 짜릿하고 통쾌하고 -그 짧은 순간에 볼펜의 윗대가리를 눌러 뾰족한 무기로 변신시키는 '똑딱'하는 소리가- 느껴질 수도 있다. 혹은 모나미 볼펜이 이 영화의 '정의(?)'를 내려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복남은 모든 걸 참고 산다.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섬의 모든 남자들에게 유린당해도,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만 해도 복남은 그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맑게 살아간다. 마치 사람인 것은 맞지만 '여자'이기는 포기한 사람처럼. 그런 복남에게도 희망은 있었기 때문인데 그녀의 딸 연희와 서울에 사는 어릴 적 친구 해원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딸 연희가 죽음으로써 -정확히는 희망이 사라짐으로써- 급반전하는 동시에 하나의 복선이 깔린다. 하지만 그 복선이 꼭 필요했었나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다. 반전을 노린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하기엔 친구 해원의 태도가 너무 불분명하다. 더군다나 '서울 여자'라는 도도하면서도 건방지고. 때로는 친구와 연희 걱정도 하는 캐릭터인 그녀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우리나라 영화는 어떤 '소재'에 무게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소재라는 것이 영화를 대변하는 -어쩌면 이야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해원의 거짓말이 그런 의도를 두고 설정된 것이라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피리'가 그것에 속하는데 복남과 해원의 우정이나 추억을 상징한다거나 아님 복남은 끝까지 해원을 친구로 생각했다거나 하는 정도의 메시지를 남기기엔 영화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다. 영화는 "왜 해원은 배신했는가?"에 전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그런 설정을 연희의 죽음과 동시에 깔아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나중에 감독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풀릴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전체 내용은 간단하다. 몇 사람 밖에 없는 섬 '무도'를 배경으로 그곳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복수를 자극 -이 영화는 남성보다는 여성 입장에서 봐야 좀 더 자극적이고 통쾌할는지도 모른다- 한다. 포스터의 글귀처럼 미치도록 잔인한 핏빛 복수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재밌다는 생각이, 재밌다는 생각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클로징 장면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무도와 해원의 누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엉뚱하거나 다소 불편한 설정, 자연스럽게 못한 설정도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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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력이 빛난 'WINTER'S BONE'(2010)

2010. 11. 18. 22:11

미국 | 드라마
감독. 데브라 그래닉
출연. 제니퍼 로렌스, 존 혹스, 로렌 스윗처, 셀리 웨거너
영화는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리'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집과 땅을 담보로 한 보석금으로 풀려난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집을 지켜야 하는 '리'는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언제나 섬뜩하게만 느끼던 삼촌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영화 자체로 보면 그다지 훌륭하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내용상의 개연상이 많이 부족한 듯싶다- '제니퍼 로렌스 (Jennifer Lawrence)'의 감정 연기, 표정 연기력 만큼은 인정해야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평점이 높은 이유도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력 때문이다.
촬영은 '제니퍼'의 동생역을 맡은 '애슐리 톰슨(Ashlee Thompson:무명)' 이 실제로 사는 '오자크(미국중부에 위치한 Missouri주의 Ozark고원)' 고원의 민가에서 이루어졌다. '제니퍼'는 역할을 위해 고원의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촬영 1주 전부터 '애슐리'의 집에 묵었는데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친해지고 그것을 본 감독이 남동생 둘이 있는 설정을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것으로 서둘러 변경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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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이정재 주연의 '선물'

2010. 11. 3. 08:39

용기씨, 내가 언제부터 용기씨 좋아했는지 알아?

7~8년 정도 전인 거 같은데 당시 DVD가 품절이라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몇 달을 기다리고 수소문 끝에 겨우 목동에 있는 DVD샵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중고'로.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은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이영애’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속 이 장면도 좋아한다. 용기가 정연의 아픔을 알고 집으로 달려 들어가 정연에게 왜 아프냐고 하소연한다. “너.. 왜, 왜.. 남편이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아?” 하면서 말이다.


영화는 어지간히도 흔한 전통(?) 멜로다. 오기환 감독의 '데뷔작'이니만큼 연출이 다소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정해효의 코믹 연기가 몰입도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멜로’면에서 보자면 적당히 성공했다고 평하고 싶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물’은 김태희가 영화로 데뷔한 작품이기도 하다. 정연의 중학교 시절을 연기한 배우가 김태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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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추억편'을 아십니까.

2010. 11. 1. 20:21

바람의 검심 '추억편'은 나에게 있어 의미가 큰 작품이다. 한 작품을 서른 번 넘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깨우쳐 준 작품이기도 하고 재패니메이션의 세계에 흠뻑 취할 수 있게 해 준 정말 어느 한 곳 나무랄 데가 없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품의 무게를 잘 실어낸 OST는 지금 들어도 너무 감동적이고 훌륭하다. 이 작품은 4부작의 OVA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을 보자.



꼬마 '신타'는 검을 약간(?) 한다는 스승 히코세쥬로를 만나 '켄신'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전 장면에서 스승은 살짝 무게를 잡으며 독백을 날리는데 그 대사 중에 '흩뿌려지는 피와 백매향의 냄새'라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작품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버린 대사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작품 내내 녹아드는 '켄신'과 '토모에'와의 애절한 이야기의 시작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스샷 한 장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을까

이 작품의 장르를 따지자면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그 구성은 범상치가 않다. 정말 흔하지 않은, 언제 또 이런 구성의 '멜로'를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힘이 실려도 군더더기 없이 제대로 실렸고 유혹을 해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유혹한다.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극도로 절제된 화면과 대사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구성이 이 작품이 가지는, 표현하기 힘든 잔인한 매력이다.

'꼬마. 이름이 무엇이냐?'
'신타'
'검객에게는 너무 부드러운 이름이구나. 이제부터 네 이름은.... 켄신(劍心)이다.'
'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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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먹지 못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

2010. 10. 31. 17:21

감독에게 묻는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 영화인가?" 아니면
"현실에 반영하고픈 영화인가?"

다시 물어보면
"감독은 현실을 이렇게 본 것인가? 이렇게 보고 싶은 것인가?"

다시 풀어 물어보면
"당신만 사이코면 됐지, 스텝들까지 사이코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는가?"

보통 영화를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보이지 않는 스텝들까지 모두 갈채를 받는 영화와 그들 모두를 싸잡아 욕을 먹게 하는 영화. 다시 말하면 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스텝들의 노고가 치하되는 영화와 헛되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이 영화는 후자에 속한다.

'악마를 보았다'는 내용이 없다. 복수를 내용으로 하기엔 너무 흔하고 뻔하다. 요리를 하듯 단순히 논란이 될 정도의 '잔인함'을 첨가했다고 해도 그닥 끌리질 않는다. 요즘의 스릴러 영화들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잔인하다고 보인 부분도 없고 말이다. 복수를 내용으로 하자면 '추격자'와 너무 비슷하고 내용면에서도 '추격자'가 나았다.  차라리 지금도 속편이 나오고 있는 "SAW" 시리즈의 경우는 긴장감과 재미와 반전이 있다. "SAW" 1편의 경우는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다는 평도 많았고 흥행에도 대성공했다. 구지 "SAW" 와 비교를 하는 것은 영화의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 때 최민식이“폭력에 대해 제대로 까발려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고작 한 배우가 영화 몇 편에서 주먹 좀 휘둘렀다고 폭력을 알까. 고작해야 연기 좀 하는 "연기파 배우" 인 주제에 말이다. 영화의 심각성은 최민식의 이 멘트 하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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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첨밀밀'의 경적소리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이유

2010. 10. 25. 20:06

97년 영화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던 여명은 이 영화에 대해 "이 작품은 사랑을 그린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자유의 여신상과 거리의 수많은 사람을 잇따라 보여주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사람들간의 인연, 산다는 게 전쟁이지만 열심히 사노라면 좋은 날이 온다는 점 등을 생각케 했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영상은 옛사랑 이요(장만옥)와 소군(여명)이 서로의 재회와 이별을 아쉬워하는 표현을 너무 잘 녹여낸 장면이다. 경적소리가 이토록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영화는 '첨밀밀'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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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애드버킷(Devil's advocate)

2010. 10. 21. 21:49

97년도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난 후 '알 파치노'라는 배우에 다시 한 번 매료될 수 밖에 없었고 '시나리오 정말 좋다!!'라며 박수를 쳤다. 아! 물론 남아공의 여신으로 불리는 샤를리즈 테론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허영은 내 최고의 기호품이지"라는 대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을 달리듯 매번 승소하는 주인공은 결국 자기 자만에 빠지고 만다. 영화에서 자신을 '아버지 또는 사탄'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알 파치노'의 말은 "내가 곧 너의 구원자다"라는 말과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다만 성악설이 존재하는 조건이 충족되는 하에 말이다"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는 본래 영어에 있는 숙어로 <남의 흠을 캐는 사람>, <반대를 위해 고의로 시비를 거는 사람>, <악역을 맡은 사람>을 의미하며 동시에 카톨릭 용어로 <시성(諡聖) 조사역>을 뜻한다. 어떤 인물을 성자나 복자로 시성할 때 과연 시성될 자격이 충분한지를, 그 일생과 주변인과의 관계와 업적과 기적 여부 및 그 신빙성에 대해 먼지 한 톨까지 털어서 조사하는 사람으로, 제3자의 눈에는 참으로 욥을 시험한 악마의 화신이라 할 만큼 꼬치꼬치 트집을 잡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누가 게티스 사건 때 최선을 다 하랬나? 누가 결정한 거야?"
- 당신이 그렇게 시킨 거예요

"모예즈 사건은? 교황이고 사이비고 다 같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싸잡아 몬 게 누구인데?"
- 날 갖고 논 거예요! 시험을 한 거라구요!

"컬른이 유죄인 것도 넌 알았지. 사진들도 봤고"
"그러고도 넌 그 여자를 증언대에 세웠어"
-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야. 거짓말하게 시킨 거라구!

"천만의 말씀! 지하철에서 내가 뭐랬지?"
"뭐라고 그랬냐고!"
"질 때라고 했더니 넌 아니라고 했지?"
- 져요? 난 안 져요
- 난 이겨요
- 난 항상 이기죠!
- 난 변호사고 이기는 게 직업이니까!

"내가 졌어"
"허영(vanity)은..."
"내 최고의 기호품이지"
"아주 근본적인 거야"
"이기심(self-love)은..."
"원초적인 아편이지"
"네가 매리 앤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냐"
"단지 더 사랑한 사람이 있었던 거지"
"바로 너 자신이야"
-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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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동영상

2010. 10. 20. 21:4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영화는 195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한 진 켈리(돈 락우드), 도널드 오코너(코스모 브라운), 데비 레이놀즈(케이시 셀든) 주연의 '뮤지컬 영화'이다. 두 남자 주인공의 탭댄스가 아주 일품이다. 내용의 전개는 유쾌하고 즐겁게 막힘없이 진행이 된다. 아래 영상은 돈이 여인을 집에 바래다주고 그 행복에 겨워 빗속에서 노랠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다. 빗소리가 이렇게 유쾌하게 들릴 수가 있는 걸까. 보라, 택시를 그냥 보내는 장면에서부터 행복이 느껴진다.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 DVD 코멘터리에 보면 오랜 세월이 지나 백발이 된 데비 레이놀즈가 진 켈리를 회고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도 찾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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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

2010. 10. 18. 23:08

어릴 적 막연하게 '반전'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나이에 본 영화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로 기억된다. 사실 이 영화는 리처드 기어보다는 이 영화로 데뷔한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일품이었다고 보이는데 마지막의 반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

영화에 조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반전'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프라이멀 피어'를 다시 찾아보게 된 계기가 'Usual Suspect'를 보고 난 후였다. 사실 '반전'영화라는 걸 알고 봤지만 어디에 반전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흔히 사람들은 이 영화의 반전이라면 마지막 부분을 꼽는다. 멍때리기에 이만한 반전도 없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고 감독이 괘씸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 고맙기까지 하다. 어떤 이는 화도 치밀어 오를 것이다.

이 영화의 반전은 몇 군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마지막 장면보다도 아래 장면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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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outdoor lamp)'

2008. 3. 25. 22:29

1. 왜 ‘외등’인가?

KBS가 10년간 추진하는 HD TV문학관 100선 가운데 8편이 2005년에 방송됩니다. 그 가운데 이미 ‘외등’을 포함 4편이 5월 중에 방송되었구요. 이제 4편이 남았습니다. 저는 하반기에 방송할 또 한편을 제작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100선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왜 박범신 선생님의 ‘외등’을 선택했느냐 질문이 주위에서 많았습니다. ‘소나기’, ‘역마’와 같은 근대 순수 문예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2000년대 현대문학도 아닌, 어찌 보면 ‘80년대식’의 ‘낡아 보이는’ 대중소설을 왜 문학관으로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나 봅니다.

저는 대학을 85년에 들어갔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80년대 초반에 보냈습니다. 그 때는 감수성이 무척 예민하던 시기라 소설 한편에도 눈물을 떨궈가며 탐독했는데, 당시 중고생 모두들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토스토옙스키의 ‘죄와벌’, 지드의 ‘좁은 문‘ 따위의 외국 ’연예류‘ 소설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참고서를 사러 들른 헌책방에서 우연찮게 한국 소설책을 한 권 접했는데, 그 소설이 바로 박범신 선생님 작품이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코끝이 찡했던 장면은 애인이 숨을 거두고 넣어진 관 위로 남자 주인공이 준비했던 하얀 웨딩드레스를 얹어주던 부분이었던 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꼭 박범신 선생님의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터에, 2005년 ‘HD TV문학관’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선생님의 작품의 거진 반은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터라, 제가 새로 읽고 만들 작품을 남겨놓지 않으셨더군요. (지금 KBS 주말 드라마를 연출하시는 정을영PD 선배가 도맡다시피 했습니다.)

‘외등’은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입니다.

첫 장면은 서영우의 동생 -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복이 아니라, 재취하여 들어온 여인의 소생- 서재희에게 오빠의 시신을 확인해달라는 경찰의 전화입니다. 서영우는 민혜주가 입원했던 병원의 근처 삼나무 아래서 동사한 채 발견된 거죠.

바로 이 장면이 제 시선을 담박에 붙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일생을 마감 짓는 남자, 서영우.
물론 원작에서는 민혜주가 이미 떠난 빈 병실을 바라보며 죽습니다만, 아무래도 죽어가는 서영우의 눈에는 분명이 허상이나마 민혜주가 보였을 거란 상상을 나름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꺼져가는 플래쉬의 필라멘트, 눈에 덮혀가는 영우의 어깨, 이런 이미지들이 가슴속을 덮쳐왔습니다.

‘플래쉬는 그럼 왜 걸어놨냔 말이야?’

‘글쎄요, 누군가 자신을 보기 바랐던게 아닐까요?’ (소설 P15)

이 강렬한 한 장면이 바로 소설 ‘외등’이 보여주고자 했던 ‘사랑의 원형질’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드라마 ‘외등’이 극적으로 화면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 장면만 확실히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그래서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면, 소설의 창의적인 변주가 가능할 것이다‘란 믿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은 356페이지에 이르는 장대한 양인데다가 주인공들이 10대에서 50대에 걸치는 기나긴 세월의 사랑이야기인 탓에, 이를 100분 분량의 단편 드라마에 담기 위해서는 극적 변주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민혜주는 일제 태평양 전쟁에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역사의 아픔을 지닌 어머니를 둡니다. ‘정글에서 왜군들의 정액을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던’ , 그래서 매독이란 성병과 더불어 남자에 대한 광적인 혐오 등 정신적 상처가 깊이 패인 가련한 여인입니다. 물론 소설 속의 민혜주는 일본인의 피를 받지 않았습니다. 민씨라는 뜨내기 사내의 소생이라고만 표현됩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차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서산댁이 일본 사창가를 떠돌다가 민혜주를 얻는 것으로 설정됩니다. (방송 분에서는 이 장면과 관련한 부분이 편집되었습니다, 혜주와 서산댁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 서산댁과 혜주의 대화 장면 등...DVD 본에서는 생략된 15분 가량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민혜주는 한국과 일본의 경계인이며, 불행한 역사의 현화입니다.
일군 위안부란 과거는 불행하고도 굴욕적인 우리의 현대사입니다. 가해자인 일본에서는 부인하고 잘못을 인정치 않고 있지만, 양측의 어떤 입장을 떠나서 그저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더라도 차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분명한 아픔의 역사입니다.

몇 해 전 일본인 탈렌트 유민(후에키 유코)씨가 일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일본에 나가자, 일본의 우익 단체들이 ‘네가 왜 눈물을 흘리느냐’ 며 유민씨를 공격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저는 혹시 일본인들이 보더라도 그네들 역시 ‘가슴 아프고 반성을 하도록’ 호소하고 설득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서영우가 있습니다. 70, 80년대 좌우익의 이념이 서로 서린 칼날 맞대던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그 낙인을 등에 지고 사는 남자입니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관성 탓인지 노동운동가로 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드라마에서는 그 낙인에 대한 서영우의 반작용을 다른 각도에서 현실화하고자 했습니다.
‘지울 수 없다면 덧칠이라도 해야겠다는’ 영우의 몸부림과 혜주의 현실도피의 욕망을 맞닿게 하고 싶었고, 어느 누구도 이 둘을 비난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씬 86 바닷가 어느곳

혜주 영우 넌 어디쯤, 그리고 난 어디쯤 그 낙인이 찍혀 있을까?
영우 그건 우리 눈엔 안 보이는데 있어, 남들에겐 보이지만.

이 낙인이라는 공통점이 이 두 남녀를 묶는 운명적 고리이며, 다른 편에서는 두 남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덫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노상규는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다른 아이콘입니다.
일제 때부터 친일로 기득권을 누리면서 부를 축적한 매판자본의 상징입니다.

‘노상규의 조부가 총독부의 고급 관리로서 일제의 야만적 전쟁수행을 위해 징병을 독려하고 군량을 모을 때, 서산댁은 열 몇살의 나이로 말라리아 들끓는 정글의 움막에서 포악스런 왜군의 정액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노상규의 부친은 파죽지세 재산을 늘렸으며...(소설 P350)

이렇듯 비틀어진 한국 근현대사의 각 꼭지점 위에 서영우, 민혜주, 노상규가 서 있었던 것이며, 적어도 결국 외적으로는 서영우와 민혜주의 사랑이 노상규에게 투항하고 마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이것이 현실의 비극입니다.

외등은 ‘단순한 사랑 놀음’의 이야기에 멈추지 않습니다. 사랑은 운명적이라고 느낄 때 더욱 강렬하지만, 그 운명성이란 역사적 서사와 맞물릴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등’은 ‘사랑의 원형질’에 대한 탐구이며, 동시에 역사에 대한 의미있는 반추가 되는 것이죠.

ps. 작년에 TV문학관 '외등'을 보았다. 2005년 5월 경에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인데 우연찮게 작년에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6개월 정도 지난 오늘 연출을 맡은 최지영PD의 후기를 보았다. 그것이 위의 내용이다. 보기 드물게 잘 만들어진 단편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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