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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왜 안 오나 했더니…

2010. 8. 28. 10:28
2004년 환승요금제 이후 누적손실 4800억
달릴수록 적자… 122곳 중 43곳 도산 위기


▲ 지난 8월 12일 서울 서대문역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아내는 작년 크리스마스 전날 집을 나갔습니다. 얼마 전에는 밥을 하려는데 쌀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며 송인선씨는 눈물을 훔쳤다. 송인선씨는 서울시 성동구 마을버스 성동 02번을 운영하는 응봉운수의 대표다. 응봉운수의 사무실은 차도 올라가기 힘든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나마 10평 남짓의 이 사무실도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길 예정이다. 송씨는 그가 20년간 일궈온 사업이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며 참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송씨의 하루는 유난히 길다. 그는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그 다음날 새벽 2시에야 비로소 잠이 든다. 회사 운영이 힘들어지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1인 4역을 해내고 있기 때문. 그는 직접 버스를 운전하는 것은 물론 버스 정비, 그리고 심지어 운전기사들 식사까지 직접 준비한다고 했다. 
   
성동구의 응봉동과 금호동 일대는 대현산 자락에 자리 잡은 탓에 유난히 가파른 골목길이 많은 동네다. 응봉운수에서 운영하는 성동 02 마을버스는 왕십리역에서 신금호역까지 다니는 노선으로 지난 15년간 주거단지, 노인정, 유아원, 학교 등 응봉동, 금호동의 언덕길 구석구석을 잇는 귀중한 교통수단이다. 
   
1일 130만명 수송 ‘서민의 발’
   
송씨가 처음 이곳에 자리 잡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사업이 수월하게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2004년 통합환승요금제가 도입되면서 어려움이 닥쳤다. 지하철과 요금을 나눠가지게 되면서 이른바 환승 손실액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씨는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내 20년을 바친 사업인데 어떻게 한순간에 포기할 수 있겠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버티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승객이 적은 낮 시간대에는 배차간격을 늘릴 수밖에 없다. 
   
성동 02번 버스 안에서 만난 승객 유병철(47)씨는 어머니댁을 방문하기 위해 성동 02번 버스를 일주일에 2~3번은 타는 단골 승객이라고 했다. 35년 전부터 이곳에 살다 얼마 전 이사를 간 그는 성동 02번 버스에 대한 의견을 묻자 우선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불편하고 아침과 저녁시간에는 승객이 너무 많아서 늘 만원버스라는 불만을 털어놓으며 버스 운행 대수를 좀 늘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어 유씨는 “성동 02번 버스는 이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발과 같은 존재다. 이 노선이 없다면 저희 어머니는 물론 어르신들이 이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다닐 수가 없어 발이 묶인다”고 말했다. 그는 응봉운수의 힘든 사정을 듣자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나라에서 보조를 해줘서라도 서민들의 발인 마을버스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버스는 1980년대 초 산동네, 비탈길과 같은 교통 사각지대에 사는 소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시민들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해 오며 30년간 성장한 마을버스는 현재 1일 130만명을 수송, 전체 버스 수송 분담률 20%를 담당하는 대중교통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통합환승요금제가 실시된 이후부터 서민들과 함께 해온 수많은 마을버스업체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환승 승객 1인당 300원 손실
   
서울시가 대중교통 개편으로 통합환승제를 도입한 이후 마을버스업계를 대상으로 예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객 수는 그 전에 비해 13% 정도 증가했다. 그러나 마을버스업계는 승객 수의 증가가 환승손실액을 메울 만큼 수입을 증가시키지는 못했다며 그 손실액을 서울시에서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시민이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1인당 600원의 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환승제 도입 이후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으로 환승할 경우 마을버스업체에는 평균적으로 300원 미만을 내게 되는 것. 
   
예를 들어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할 경우 그 요금에 따라 마을버스(600원)와 지하철(900원)이 6:9로 나눠 마을버스에는 360원, 지하철에는 540원의 요금을 지불하게 되는 셈. 또한 이용객이 환승 횟수를 늘려감에 따라 마을버스업체가 가지는 수입은 최하 129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 업계 추정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294원의 수입이 마을버스업체로 들어간다고 한다. 승객 1인당 300원 정도의 손실을 업체가 떠안는 실정인 것이다. 
   
2004년부터 2010년 현재까지 마을버스의 누적손실액은 4800억원이 넘는다. 작년 한 해만 해도 1000억원 가까이 손실을 봤다고 한다. 환승에 따른 시민들의 교통요금 할인혜택이 마을버스업계에는 적자로 누적된 셈이다.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 김기용 부장은 “마을버스업계는 열악한 재정 상태로 인해 업계 전체의 금융권 부채가 300억원에 이른다”며 “전체 마을버스 122개의 업체 가운데 43개의 업체가 도산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지원금 3000억, 마을버스는 13억
   
통합환승제가 도입된 후 시내버스나 지하철도 손실액이 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유독 마을버스만 지원이 안 되고 있다. 지하철의 경우 서울시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내버스의 경우에도 준공영제로 운영해 서울시에서 작년에는 2800억원을 지원했고, 올해도 3100억원 예산이 책정돼 매년 평균 3000억원씩 환승 손실액의 보전금으로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마을버스는 시내버스 지원금의 1%도 되지 않는 13억원 정도밖에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 손실액도 6년 전 책정된 운송원가 대당 33만 5000원을 기준으로 원가의 80%에 해당하는 26만원 이하의 수입을 가지는 12~13개 업체만 13만원씩 보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조금을 받는 12개 업체 중 하나에 해당하는 응봉운수 송인선 대표는 “이 정도 보조금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는 마을버스를 공익사업으로 보고 좀 더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버스의 열악한 환경은 운전기사들의 월급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내버스의 경우 월급이 330만원이다. 그러나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은 평균 149만원에 불과해 기사를 구하기 어려워 운행을 하지 못하거나 업체 사장, 가족까지 동원돼 겨우 운행을 유지하고 있는 업체도 많다. 
   
또한 저임금이다 보니 숙련되지 않은 기사나 고령자가 많은 실정이다. 이렇다보니 마을버스를 타는 손님 또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연속되고 있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반값 기사의 서비스는 반값 서비스밖에 될 수 없다”며 “최저임금 수준인 기사 월급을 현실화해서 마을버스 서비스의 질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승객이 많아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 해도 마을버스업체는 쉽게 증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시내버스 체계를 개편하면서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막기 위해서 마을버스를 포함한 버스의 총 대수를 제한하는 ‘버스 총량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보완 방법 마련하고 있다”
   
마을버스업체에서 마을버스를 한 대 늘리기 위해서는 시내버스업체와 시내버스를 한 대 줄이는 거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총 대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가 이뤄지게 되면 마을버스업체는 번호판 값으로 70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버스를 사는 데 드는 비용인 9300만원을 합하면 마을버스 한 대를 늘리기 위해서는 약 1억6000만원이 필요한 것이다. 승객이 늘었다하더라도 적자에 허덕이는 마을버스업체에서 증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은 마을버스업체 경영난의 근본적 대책마련을 위해 지난 7월 21일 최근 경영악화에 놓인 열악한 마을버스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 대안을 토론하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책토론회를 통해 마을버스 업체들의 경영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을 얻는 데 한걸음 다가섰을 것이라고 조합은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 이병성 이사는 마을버스 지원 대책에 대해 “현재의 지원방식은 원가방식이라서 환승승객을 많이 태우면 태울수록 적자가 발생하게 되어 있는 모순된 지원방식”이라며 “환승 횟수에 따라 환승할인 손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버스조합의 김기용 부장도 “환승 횟수에 따라 환승할인 손실을 지원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되, 하위 업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적으로 마을버스업계가 서울시의 재정지원을 받을 근거는 마련돼 있다. 문제는 서울시의 예산지원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버스정책 담당관 박원근 재정지원팀장은 “타 시·도의 정책과 조합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마을버스 적자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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