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세차례 방문한 이상득 의원 '리튬외교'막전막후

2010. 8. 27. 16:17

작년 8월 첫 방문 때 모랄레스 “친미 한국보다 일본과 하겠다”
올 1월 “먼 나라서 세 번 와, 한국 신뢰”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매번 리튬 외교의 1등 공신으로 꼽는 한국 측 인사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5일 “나이도 많은데 지난해와 올해 세 차례 해발 4000m의 볼리비아를 찾았다. 보통의 관심과 열정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 의원은 지난해 8월과 10월, 그리고 올 1월 볼리비아를 찾았다. 첫 만남에서 “리튬 개발을 일본 등 다른 나라와 할 수 있다”고 냉담했던 모랄레스 대통령이 요즘은 “경제협력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높다”고 말한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의원의 리튬 외교,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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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과 친한 나라"=이 의원 일행이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공항에 도착한 건 지난해 8월 14일 오전 1시였다. 그때까지도 모랄레스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동분서주 끝에 다행히도 “만나겠다”는 연락이 왔고 오후 늦게 대통령 접견실을 찾았다. 하지만 모랄레스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0여 분이 더 흘렀다. 이 의원은 수행원들에게 “오히려 잘된 거다. 늦는 사람이 어찌 됐든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만큼 우리의 입장을 보다 공격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모랄레스 대통령과 이 의원은 한 시간 정도 만났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면담에서 “리튬 개발을 일본·프랑스 등 다른 나라와도 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과 친하지 않으냐”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반미(反美) 좌파적 인식과 함께 한국에 대해 냉담한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이 의원은 “우리를 다른 나라와 똑같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도 볼리비아처럼 식민지 경험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우린 (볼리비아가) 어려운 때도 함께 있을 거다”라고 설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26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앞서 양국은 볼리비아 리튬 자원 개발 협력을 본격화 하기로 합의했다. 왼쪽은 이상득 의원. [조문규 기자]


◆“한국에서 대통령 형 왔다”=그로부터 2개월 뒤인 지난해 10월 26일 이 의원은 또 볼리비아를 찾았다. 볼리비아 대선을 40여 일 남겨둔 시점이라 모랄레스 대통령은 선거운동 중이었다.

26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은 모자보건소 코레아병원 준공식엔 모랄레스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는 일종의 유세 연설에서 “야당이 나보고 대외관계는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원조해서 지은 거다. 단상엔 한국 대통령의 형도 왔다. (야당 주장대로라면) 과연 가능한 얘기냐”고 외쳤다. 그는 이 의원을 일으켜 세우고 손을 맞잡았다. 그날 오후 9시 두 사람이 한국대사관저에서 만났다. 이 의원의 만찬 초대에 모랄레스 대통령이 응한 것이다. 마침 모랄레스 대통령의 생일이었다. 이 의원은 식사를 마친 뒤 침실로 모랄레스 대통령을 이끌었다. 통역만 대동한 채였다. 밀담은 한 시간여 이어졌다. 이후 이 의원이 동행한 인사들에게 해준 얘기는 이랬다. “뒷주머니에서 삼성휴대전화를 꺼내 배터리만 분리해서 보여줬다. 그러곤 ‘삼성에서 만든 배터리인데 크기가 다른 것만 해도 200종이 넘는다더라. 리튬배터리는 대량생산이 안 되는 거다. 와이셔츠·양말 파는 것과 다르다’는 말을 했다.” 일행 중 한 명이었던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모랄레스 대통령에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얘기를 이 의원이 한 것”이라며 “한·볼리비아 리튬 산업화 검토 공동위가 출범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코로코로 구리광산의 광미(鑛尾)처리장 준공식에서도 만났다. 만남을 위해 이 의원은 3시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재선 대통령으로서 본 첫 손님=올 1월 방문은 재선에 성공한 모랄레스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차였다. 21일엔 원주민식, 22일엔 현대식 취임식이 있었다. 동행한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원주민식 취임식 직전에 단 두 사람이 차 한잔 마시는 스케줄이 있었다”며 “대통령의 헬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취소됐지만 모랄레스 대통령과 이 의원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두 사람이 따로 만난 건 23일 오전 7시30분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30분 뒤 각료 임명식이 있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 의원에게 “연세도 적지 않은 분이 먼 나라를 세 번이나 오셨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이로써 한국과 볼리비아 양국 간에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줘야 하는데 특사님(이 의원)을 봐야 해 약속을 잡았다”는 말도 했다. 이 의원은 “한국에 오시라”고 초청했고 모랄레스 대통령은 흔쾌히 “알겠다”고 응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아시아권 국가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 이 의원과의 약속을 지켰다.

[중앙일보]
글=고정애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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