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Practice‥`감자칩` 히트 제조기 日가루비…원료감자 재배 방식까지 바꿔

2010. 8. 27. 15:49


농심 '새우깡'의 원조가 일본 제과업체 가루비(Calbee)의 '갓빠에비센'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루비는 1964년 새우가 첨가된 갓빠에비센을 개발했고, 농심은 이를 참고해 1971년 새우깡을 내놓았다. 새우깡이 한국에서 국민과자로까지 불리듯이 갓빠에비센은 일본에서 장수 히트상품의 명성을 지금도 유지한다.

가루비는 일본 제과시장에서 히트제조기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감자칩이다. 가루비의 감자칩 생산량은 1일 208만봉지로 연간 매출액 540억엔(약 7500억원)에 달한다. 경쟁업체인 메이지제과(80억엔) 제품의 약 7배다. '포테이토 칩'이란 상표를 사용하는 가루비의 감자칩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낵이다.

뿐만 아니다. 스틱 형태의 감자칩인 '자가리코'와 '자가비'는 각각 연간 매출 250억엔과 56억엔(2009년 기준)을 자랑한다. 일본 제과시장에선 연간 20억엔어치만 팔려도 히트상품이다. 일본 제과시장 점유율 40%로,메이지제과(50%)에 이어 2위인 가루비가 히트상품을 줄줄이 내놓는 비결은 무엇일까. 한번 내놓은 상품은 팔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개선의 개선을 거듭하는 소위 '근성 경영'이란 분석이다.

◆안 팔린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가루비 스낵의 잇딴 히트 비결에 대해 마쓰모토 아키라 회장은 최근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철저히 시장조사를 하고, 신상품 아이디어를 짜내서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세스는 다른 회사와 다를 게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건 이런 기본 작업에 집념을 쏟았다는 점이다.

특히 한번 내놓은 상품은 팔릴 때까지 개선에 개선을 거듭한다는 게 가루비의 원칙이다. 대표적 사례가 '자가리코'.가루비가 이 제품을 처음 시판한 건 1994년.당시 이름은 '자가스틱'이었다. 스틱형 감자(일본말로 '자가') 스낵이란 뜻에서다. 개발기간만 3년 이상 걸린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자가스틱은 처음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 때부터 가루비의 근성이 발휘됐다. 가루비는 왜 안 팔리는지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다. 결론은 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났다. 상자형 종이포장을 열면 감자 스틱이 반토막 난 경우가 허다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발진은 감자 스틱의 길이를 아예 절반으로 줄이고, 포장도 강도가 높은 종이컵으로 바꿨다. 또 감자스틱이 사각형이어서 입안에 상처가 난다는 소비자 불만에 따라 형태를 원통형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히트상품인 자가리코다.

가루비는 신제품을 판매하면 13주일 후에 '13주 리뷰'라는 회의를 연다. 문제점 도출 회의다. 시판 후 3개월이면 소비자 반응은 명확히 드러난다. 그 중에서 불만들만 모아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하는 게 '13주 리뷰'회의다. 이런 회의는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 불만이 접수될 때마다 상품개발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 전국 7곳의 고객상담실에 상주하는 상담원들은 불만이 접수되면 즉각 고객을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부스러지지 않는 감자칩?

가루비는 2008년 '부스러지지 않는 감자칩'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비자 모니터링 결과 감자칩의 불만 중 하나는 포장을 뜯었을 때 적지 않은 감자칩이 부스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걸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게 '부스러지지 않는 감자칩'프로젝트다. 연구 끝에 가루비는 두 가지 개선점을 찾아 냈다. 첫째,공장 내 생산과정에서 감자칩이 부서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둘째,원료인 감자의 크기를 균일하게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자의 크기가 클수록 감자칩이 부스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루비는 생산공정을 개선했다. 감자를 썰고 튀기는 가공과정 중 감자칩이 기계에서 떨어지는 낙폭을 최소화했다. 다음엔 균일한 크기의 감자를 공급받기 위해 감자 재배농가를 설득했다. 감자를 심을 때 간격을 균일하게 하고, 수확할 때 감자에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까지 개발해 지도했다.

마침내 '부스러지지 않는 감자칩'프로젝트는 성공했다. 개선 결과 봉지당 부스러진 감자칩의 수를 종전의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었다. 원료인 감자 하나하나, 감자칩 한 개 한 개에도 정성을 다하는 가루비식 근성 경영의 결실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가루비가 원료인 감자 재배방식까지 개선했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가루비가 원료로 쓰이는 감자 전량(연간 22만t)을 계약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루비는 일본 제과업체 중 유일하게 감자칩 전용 감자를 계약 재배한다. 홋카이도 등 전국의 감자 계약재배 면적은 6700㏊로 도쿄시보다 넓다. 재고관리 등 취급이 어려워 다른 제과업체는 꿈도 못 꾸는 감자 계약재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주도적으로 제품개선을 하려면 원재료부터 최종 생산까지 직접 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루비 관계자)

◆'감자칩은 신선식품이다'

감자칩의 '신선도'를 추구하는 것도 가루비만의 특징이다. 가공식품인 감자칩에 신선도가 왜 중요할까. 가루비는 감자칩도 신선식품이란 생각이다. 신선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신선도가 높을수록 칩 표면의 기름이 산화하지 않아 본래의 고소한 맛이 유지된다. 이를 위해 가루비는 제조일로부터 45일이 지난 상품은 팔지 않는다는 내부 원칙을 갖고 있다.

감자칩의 유통기한은 제조 후 4개월이다. 하지만 한 달 반이 지난 제품은 판매점에서 직접 회수한다. 이를 위해 200여명의 계약직 주부사원을 고용,전국 소매점에서 팔리는 가루비 감자칩의 제조일자를 조사하고 있다. 45일이 지난 감자칩이 진열된 것이 확인되면 즉각 제품을 회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조금이라도 신선하고 맛있는 감자칩을 고객들이 맛보게 하고 싶다"는 집념도 근성 경영의 한 단면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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