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수요 집회, 그리고 김요지 할머니의 분향소를 다녀오다.

2011. 12. 14. 22:45
부끄러울 말이지만 수요 집회가 있는 줄 난생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김요지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발인이 언제냐고 물으니 내일 오전 9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뵙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요지 할머님.

 

故 김요지 할머님

 

어제 오전 8시쯤 김요지 할머니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이를 보도한 매체는 약 20군데, 블로그는 10개 미만입니다. 그리고 오늘 1000번째 집회 소식을 알리는 보도는 중복보도를 감안하더라도 무려 200개가 넘습니다. 현재 시각으로 보면 오늘 하루 동안 5분에 한 번씩 1000번째 집회 소식을 알리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리는 블로그 수도 어제와 달리 50개가 넘습니다.

12월 들어서 수요 집회를 알리는 보도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늘 있어왔던 '수요 집회'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 '1000번째'를 붙여야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11월에도 '수요 집회'를 알리는 보도가 있었는지 검색해 봤습니다. 매주 3~4건 정도가 고작입니다. 매월 그 정도였을 거라 예상합니다.

생각해 보면 젊은이들은 잘 모릅니다. 알아도 제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책으로 읽고 어르신들에게 들은 게 고작이잖습니까? 아무리 울분을 토해도 일본에서 '니들이 뭘 알아?'하면 솔직히 우리는 할 말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다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앞으로의 정부는 어떨지 몰라도 현 정부는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단도직입적으로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 정부의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실세들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형이자 누나고 동생이자 친구이지 않습니까? 그 시대를 겪어온 같은 또래란 말입니다. 20년 넘게 또래들이 무시하고 젊은이들의 힘으로 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얼마나 부끄럽고 한심한 일입니까?

할머니들께서 이동할 차 한 대가 없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현대차, 기아차 해외에서 쌩쌩 잘 나갑니다. "사회공헌팀에 공문형태로 승합차 후원요청이 들어온 바 없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후원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기가 막혔습니다. 이 부분은 봉사자들의 후원금으로 오늘 승합차를 한 대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김요지 할머니는 행복한거예요. 1000회 집회랑 맞물려서 찾아주는 사람도 많네요. 지방쪽에서 돌아가시는 분은 저랑 단 둘이 3일 내내 지키다가 발인하는 경우도 있어요."

 

분향소에 사람이 거의 없다는 보도를 보곤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도착을 해 보니, 故 김요지 할머님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여러 방송국에서 촬영도 나와 주셨습니다. 시민들도 많이 와주셨고요.

 

추모제가 끝나니 더 이상 분향소를 찾는 발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 일본인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정대협 관계자들도 누차 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분향소에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수요 집회에 일본에서도 2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몇은 보름 전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할머님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합니다. 저 끝 편에 보이는 사람들이 그 일본인들입니다. 자신의 용돈과 사비를 털어 한국에 와서 할머님들을 돕고 있습니다. 김요지 할머니의 발인까지 지켜보고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정몽준 의원, 故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故 정주영 회장은 살아생전에 할머님들께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이에 정몽준 의원도 아산재단을 통해 몇 해 전부터 할머님들의 병원비는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아산재단에서 치과치료는 거부한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재단 측에 전화를 걸어 치과치료도 무료로 해드리라고 했다는군요.

오늘 집회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깨달은 바가 너무 많은 하루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참 보잘 것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더 신경 쓸 부분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외로움과 소외감을 안고 싸우는 분들도 계시다는 사실. 세상이 그나마 살만하다고 하다면 다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김요지 할머님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쓰면서 '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 단어는 일본에게 반성을 촉구할 때나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말이니 그 말의 의미도 그들을 통해 하루 빨리 잊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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