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동네. '중계본동 104마을'을 다녀오다.

2010. 11. 23. 00:04

예전 ‘월곡’이라는 산동네를 갔던 적이 있다. 그 때 어느 아저씨가 나에게 기자냐고 묻기에 얼떨결에 대학에서 나왔다고 하니 대뜸 한다는 말씀이 ‘이래서 어디 살겠냔 말이지. 어떤 놈이 우리 집 가스통을 훔쳐갔어. 써글놈.. 아니 벼룩의 간을 빼가지, 그걸 도둑질하는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냐는 말이야. 학생양반! 이것 좀 기사에 써주오.’ 이랬다.

중계본동 104마을

지난 주말 ‘중계본동 104마을’이라는 산동네를 찾았다. 노원 역에서 내려 1번, 2번 출구 중간쯤에서 1142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된다. 10분 정도 가면 종점이고 바로 건너편에 동네가 보인다. 버스를 타고 올 때에는 잘 몰랐는데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보니 104마을 바로 앞으로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불과 10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동네의 모습은 극과 극을 보이는데 이 곳 ‘중계본동 104마을’이 서울 시내에 있는 마지막 ‘산동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는 불암산 둘레길과도 연결이 돼있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 마을을 지나는 경우가 많다. 마을을 오르다 보면 허름한 집들 사이로 고급승용차도 종종 보이는데 아마 등산을 온 사람들이 주차를 해 놓은 듯 하다. 둘레길과 연결된 입구 부근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여기가 약수턴가봐요?’
‘네, 약수터...였는데 지금은 약수터는 아니고요. 그냥 물은 먹을 만해요.’
‘오르막인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다 왔는데요 뭐..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

‘중계본동 104마을’을 방문하자고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산동네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다. 또 개인적으로 마음이 심란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이 곳은 주인 없는 집들이 많았고 사람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관인 꽃나라유치원’이라는 명판이 붙어 있는 유치원의 놀이 기구들은 녹이 슬고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유치원생이 있을까 싶어 바로 옆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여쭤봤다.

‘이 마을에 아이들이 있나요?’
‘아이들 없지..’
‘그럼 옆에 유치원은...’
‘유치원 안 해. 아이들이 없는걸 뭐.. 안하지.’

동네를 오르고 골목골목 헤집고(?) 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있는 가스통을 볼 수 있는데 언젠가 방문했던 ‘월곡’ 산동네의 하소연하던 아저씨가 생각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집들에선 소리가 나질 않는다. 구석진 골방에서 TV소리가 나면 그게 참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인 아주머니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집이면 쪽문에 귀를 대고 무슨 소린가 잠시 엿듣기도 했다. 다름 아닌 화투를 즐기며 크게 점수가 나서 좋아하는 아주머니와 못마땅해 하는 아주머니의 한숨소리가 뒤섞인 소리였다.

옷가지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길가에 널어 말리는 집도 많았고 처마와 처마 사이에 빨랫줄을 메달아 옷을 말리는 집도 있었다. 집이 저렇게 험한데 사람이 사는 걸까. 어쩌면 저 옷가지들은 지난 장마를 이겨내고 수개월째 주인 없이 마냥 매달려 있는 걸지도 모른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김장을 하는 어느 노부부도 만날 수 있었고 신발을 구겨 신고 방황하는 청년도 볼 수 있었고 마땅한 도구가 없음에도 어떻게든 깨진 창문을 막아보려 애쓰는 젊은이도 보였다. 어느 아주머니를 보고는 다시 한 번 여쭤봤다.

'이 곳에 아이들은 없나요?'
'없지요. 다들 아래로 내려갔어요.'
'네.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재개발이다 뭐다.. 살기가 어렵고 하니 몇몇 노인분들 빼곤 없죠.'

아주머니가 내가 묻는다.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
'네. 여기가 서울시에 있는 마지막 산동네인 것 같아서요. 기록 좀 남길까 하고요.'
'젊은 사람들 많이 오더라고요. 사진 찍으러..'

다 허름한 우편함을 가진 집도 많았고 어느 집의 우편함은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집주인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배추값 파동에 대비하고 텃밭을 가꾼 걸까. 교회 바로 아래 -이 동네는 교회가 참 많다- 배추를 가꾼 텃밭이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김장이 될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연탄을 집 밖에 차곡차곡 쌓아두거나 아님 포대에 6~8개씩 담아서 내놓기도 한다. 그럼 이것들을 용역이 나와서 사진처럼 싣고 간다.

‘일요일인데 일하시네요?’
‘네, 해야죠.’
‘어디.. 서울시 소속인 건가요? 일용직이세요?’
‘서울시 소속이면 일요일날 일은 안하겠죠? 용역이에요.’
‘아. 보수는 잘 받으세요?’
‘글쎄요 뭐. 일요일까지 하면 한 200정도?’

개발이 언제 될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어르신을 보았다. 1142번 종점에서 100m만 가도 그곳은 신천지다. 집 밖으로 가스통이 나올 일도 없으며 빨랫감을 길거리에서 말릴 일도 없다. 건축물 붕괴 위험이라고 집 둘레에 빨간 테이프를 두를 일도 결코 없으며 마을 곳곳에 간이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높이 솟은 아파트와 잘 정돈된 거리와 신호등, 많은 유동인구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동네를 ‘이들’과 ‘그들’로 분단시켜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우리’안에 있는 그 누군가들의 ‘힘’에 의해서 말이다. 하루 빨리 제대로 된 보상과 함께 개발이 이루어져 모든 이가 편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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