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복수극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감독 장철수
배우 서영희(김복남), 지성원(해원), 백수련(동호 할매), 박정학(복남의 남편, 만종)..
공식사이트 http://kim_boknam.blog.me 영화의 처음 부분이다. 이 장면과 조금 후에 나오는 범인을 지목하는 상황을 연결해서 책갈피 해두면 마지막 회심의 모나미 볼펜이 굉장히 짜릿하고 통쾌하고 -그 짧은 순간에 볼펜의 윗대가리를 눌러 뾰족한 무기로 변신시키는 '똑딱'하는 소리가- 느껴질 수도 있다. 혹은 모나미 볼펜이 이 영화의 '정의(?)'를 내려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복남은 모든 걸 참고 산다.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섬의 모든 남자들에게 유린당해도,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만 해도 복남은 그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맑게 살아간다. 마치 사람인 것은 맞지만 '여자'이기는 포기한 사람처럼. 그런 복남에게도 희망은 있었기 때문인데 그녀의 딸 연희와 서울에 사는 어릴 적 친구 해원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딸 연희가 죽음으로써 -정확히는 희망이 사라짐으로써- 급반전하는 동시에 하나의 복선이 깔린다. 하지만 그 복선이 꼭 필요했었나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다. 반전을 노린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하기엔 친구 해원의 태도가 너무 불분명하다. 더군다나 '서울 여자'라는 도도하면서도 건방지고. 때로는 친구와 연희 걱정도 하는 캐릭터인 그녀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우리나라 영화는 어떤 '소재'에 무게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소재라는 것이 영화를 대변하는 -어쩌면 이야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해원의 거짓말이 그런 의도를 두고 설정된 것이라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피리'가 그것에 속하는데 복남과 해원의 우정이나 추억을 상징한다거나 아님 복남은 끝까지 해원을 친구로 생각했다거나 하는 정도의 메시지를 남기기엔 영화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다. 영화는 "왜 해원은 배신했는가?"에 전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인데 그런 설정을 연희의 죽음과 동시에 깔아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나중에 감독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풀릴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전체 내용은 간단하다. 몇 사람 밖에 없는 섬 '무도'를 배경으로 그곳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복수를 자극 -이 영화는 남성보다는 여성 입장에서 봐야 좀 더 자극적이고 통쾌할는지도 모른다- 한다. 포스터의 글귀처럼 미치도록 잔인한 핏빛 복수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잔인하다는 생각보다 재밌다는 생각이, 재밌다는 생각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클로징 장면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던 무도와 해원의 누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많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엉뚱하거나 다소 불편한 설정, 자연스럽게 못한 설정도 눈에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