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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 지수가 높아도 경제는 성장할까.

2010. 11. 20. 13:29

 

먼저 짤막하게 동영상을 잠깐 보자.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이다.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엄격하고 지나치게 집중화된, 그리고 부정직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사회보다 더 나쁜 사회가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엄격하고 지나치게 집중화된, 그리고 정직한 관료들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 미국의 원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2008/2009/2010년 부패인식지수(CPI)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CPI)는 국내외 기업인과 분석가들이 각국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 정도를 조사한 것이어서 객관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CPI 발표에서는 처음으로 점수에 반영된 총 13개의 원천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한국(5.4)의 CPI는 조사 대상 178개국의 평균(4.1)보다는 높지만 우리가 속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의 평균(6.97점)에는 크게 못 미친다. OECD 평균이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인 7점대에 근접해 있지만 한국은 아직도 부패문제에 있어서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주요 20개국(G20) 중 5번째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11년 경제성장률은 G20 중 4위까지 내다보고 있다.

매년 부패인식지수 상위에 랭크되는 핀란드에서는 고위 공무원의 수입과 지출 내역이 매우 상세하게 공개된다. 공무원 재산에 의심이 갈 경우, 누구라도 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마티 요웃센 법무부 국제협력과 과장은 "제가 갑자기 아우디를 새로 사고, 제 아내가 비싼 밍크코드를 입고 다니면 제 이웃이 저를 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 의뢰를 받은 정부 감독관은 의심이 갈 경우 즉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공장이 지으려고 할 때 이 지역 주민은 해당 행정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행정기관은 문제를 제기한 시민에게 왜 공장이 들어서게 됐는가를 설명할 의무를 갖고 있다.

핀란드 성인 남자 월 평균임금은 3000유로(한화 530만원). 이중 소득세가 30%를 차지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세율도 높아진다. 이런 세금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기치를 내건 사회보장 제도가 시행된다. 우리나라에서 연일 논란이 되는 '무상급식'의 경우도 큰 틀에서 보면 '예산' 문제인데 핀란드는 선진국들 중에 완전 무상급식을 하는 두 국가(다른 국가는 스웨덴) 중에 하나이다. 완전 무상급식이 가능한 이유는 부모들이 내는 세금에 자녀들의 급식비가 포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세율이 높기 -핀란드의 조세부담률은 국민총생산(GNP)의 44.5%, 우리는 19.3%(2010년 기준)에 불과하고 세금을 많이 내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쓸 거라는 국민의 믿음이 있다- 때문이고 재원은 중앙정부 및 지자체에서 100% 지원한다. 국가적으로 모든 면에서 평준화를 찾아가고 있는 핀란드는 그래서 빈부격차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낮다.

핀란드처럼 부패인식지수가 높고 청렴결백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도 있지만, 광범위하게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품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들이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홍콩, 일본, 대만, 중국 등이 그 나라들이다. 과거 경제 대국이었던 영국은 물론 미국, 프랑스의 경우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굉장히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 성공하였고 지금도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강국이다. 물론 부정부패가 심해서 몰락하는 자이레(지금은 콩코 민주공화국), 아이티 같은 나라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등과 같이 성공하는 나라들과 자이레, 아이티와 같은 나라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부정부패로 인한 소득, 즉 다시 말해 '돈(자본)'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 지에 큰 차이점이 있다. 앞서 모래시계의 한 부분을 인용한 것도 '그 돈으로 이 나라가 유지된 거야.'하는 부분을 언급하고 싶어서였다.

다시 말하면 '돈'을 굴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흘러간 돈은 그것이 부정부패와 직결되어 있다 해도 -일부는 개인이 착취한다 해도- '돈'을 굴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배분되거나 개인적으로 착취하는 것보다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면에서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여러 사회적인 병폐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개발도상국 및 브릭스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선성장 후분배'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정부패는 사회적으로 곧잘 이슈가 되겠지만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거나 국민들이 나라에 거는 기대가 그보다 커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2010년 인간개발지수(HDI) 국가별 순위

'정의'를 내리기도 모호하지만 정직한 사회, 정직한 정치란 정말 나쁜(잘못된) 것일까? 일단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나라들도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대부분의 나라들보다는 적어도 "복지"면에서는 "복지천국"으로 불린다. 2010년 인간개발지수(HDI)를 보면 부패인식지수가 높은 나라들이 모두 상위에 랭크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년엔 26위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올해는 12위로 14단계나 껑충 뛰었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복지 면에서 잘 사는 복지국가로 발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 유럽의 행복 국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심각한 금융, 채무위기로 순위가 대폭 하락한 탓의 반사이익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선진일류국가(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 '정직'과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말은 자주 듣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경제성장률로 보면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이지만 부패지수는 2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반짝 상승하였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를 조금 틀어 생각해 보면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 경제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빌리자면 'G20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점도 이를 거들 수 있겠다. 또한 나라 어디선가 부정부패가 좀  더 시끄럽게 만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부정부패와 더불어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로 '풍부한 노동력'을 꼽는다. 아니다. '풍부했던 노동력'이 맞는 말이다. 앞서 말했던 '돈'을 굴릴 줄 아는 사람들의 부정부패보다도 -그것이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연일 '부익부빈익빈'을 외치기 바빴으면서도 자기 가정은 지키고자 했던 60~80년대 세대들의 '노동력'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는 그렇게 40년을 발전해 온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 부정부패는 어느 정도 바로잡고 그만큼을 '복지'로 돌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용어>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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